고려대학교 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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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연혁

약사

 

  사학과가 설립된 것은 1946년 8월 15일 본교가 고려대학교로 교명을 바꾸며 종합대학으로 새출발하는 것과 때를 같이 한다. 신설 당시 교수진은 金成植, 申奭鎬교수 2명이었고 학생은 정원 30명 중 6명에 지나지 않았으나 이후 1949년 9월까지 鄭在覺, 金廷鶴, 金學燁, 洪以燮, 金鎭憲, 金俊燁 교수가 부임했고, 학생 수는 96명으로 증가하는 등 3년 사이에 빠르게 체제를 갖추어 나갔다. 그러나 한국전쟁의 발발과 함께 15개월간 휴교 상태를 겪었고 1951, 1952년에는 대구 원대동의 가교사에서 신입생을 모집하여 겨우 학과를 유지했다. 1951년의 학생 수는 신입생 20명과 재학생 12명을 합쳐 32명에 불과했다. 1953년에 휴전이 되자 고려대학교는 다시 서울로 돌아와 1954년 2월까지 桂洞의 중앙중고등학교의 일부를 빌어 임시 사용하다가 마침내 1954년 2월 23일 안암동의 本校舍로 복귀하여 학과의 체제를 정상적으로 운영하게 되었다.

  사학과는 1954년부터 졸업논문제를 실시하는 등 학과의 내실화를 시도하였다. 이후 졸업논문제는 1989년 사학과가 한국사학과, 동양사학과, 서양사학과로 분과된 이후 서양사학과에서만 폐지되고 동양사학과에서는 유지되었으나, 2004년 동양사학과와 서양사학과를 통합하면서 폐지하게 되었다.

  사학과의 학과주임제는 1956년 4월부터 시작되었다. 그 전에는 각 대학의 학과 수도 적고 정원도 적었던 까닭으로 소속학장이나 학부장이 직접 학생의 수강업무와 기타 교내생활을 지도하고 관장해 왔으나 학과 증설과 정원증가에 따라 업무량이 늘어나자 1년 임기의 학과주임제를 실시하게 된 것이다. 사학과의 초대 주임교수에는 신석호 교수가 임명되었는데, 1960년 4월부터 주임교수를 학과장이라고 개칭하는 동시에 2년 임기제로 바뀌었다.

  1968년 3월, 사학과에서 조교제도가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사학과 조교는 학생들에게 학문적인 분위기로 다가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도서를 비치해 둘 수 있는 전용연구실과 이것을 관리하며 학생들을 도와줄 수 있는 조교가 꼭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여러차례에 걸쳐 학교당국에 촉구한 끝에 1968년 비로소 실현되었다. 서관 3-315호실에 사학과의 합동연구실을 지정받았고 조길태가 첫 조교로 임명되었다.

  1972년에는 사학과에서 지도교수제가 실시되었다. 1,2학년과 3,4학년 두 개 반으로 나뉘어 각각 학과교수를 지도교수로 정해서 학생지도에 적극적으로 임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도교수 한 사람이 80명을 담당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웠으므로, 1975년 9월에 각 학년별로 지도교수를 두게 되었다.

  사학과는 1989년에 한국사학과, 동양사학과, 서양사학과로 분과하여 큰 분기점을 맞게 되었다. 이후 사학과라는 명칭은 사라졌으나 사학과에서 분과된 3개 학과는 각기 정원을 30명으로 하여, 각기 고유한 특성을 살리며 서로 경쟁 보완하며 발전하게 되었다.

  동양사학과는 1989년에 30명의 첫 신입생을 받았다. 동양사학과는 1992년 1월 제1회 해외 역사유적답사(중국)를 실시한 이래, 격년제로 계속 실시했다. 특히 중국과 교류를 시작한 이후, 학기마다 중국의 대학교 교수를 객원교수로 초빙하여 강좌를 개설하고 학부와 대학원에서 강의하도록 했다. 객원교수 초빙은 2004년 사학과로의 통합 이후에도 계속 유지하고 있다. 1996년에 조명철 교수가, 2008년에는 박상수 교수가 부임하였으며, 2021년에 김한웅 교수가 부임하였다. 
현재 박상수 교수(중국최근세사)와 김한웅 교수(중국근세사)가 담당하고 있다.

  서양사는 1989년 3월 서양사학과 창립 후 30명의 첫 신입생이 입학했다. 초대 학과장에 홍한유 교수가 선임되었으며 지동식, 최영보, 홍한유, 이상신 교수가 서양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이어 1995년에 김경현 교수가 부임했고, 1996년에 유희수 교수, 1998년에 민경현 교수, 이후 최호근 교수가 부임하였다.

  2004년 3월에 동양사학과와 서양사학과가 통합하여 다시 사학과의 이름으로 재출범했다. 세계화가 급진전되는 상황에서 학생에게 지역적인 한계를 벗어난 포괄적인 역사지식을 제공하려는 취지에서 두 학과가 통합하였다. 그 동안 분과된 채 각기 발전시켜 온 학문적 역량을 통합함으로써, 과거의 이름과 전통을 잇고 새로운 사학과로 재출범한 것이다.
 

현황

 

  현재 사학과에는 4명의 교수가 재직하고 있다. 

  사학과의 교과과정은 2004학년 학과통합과 함께 대폭 조정되었다. 교양과목은 각각 공통교양 1과목, 핵심교양 13과목, 선택교양 12과목, 전공탐색교양 1과목이 있다. 공통교양과 핵심교양과목은 주로 신입생을 수강 대상으로 하는 교과목이며 선택교양과 전공탐색교양은 2학년으로 진학하면서 학과를 정한 학생을 수강대상으로 한다. 전공과목은 전공필수, 제1전공, 전공심화로 나뉘어져 각각 2과목, 20과목, 15과목이 설치되어 있다. 제1전공과목은 해마다 한 학기 개설되고, 전공심화과목은 격년에 한 학기 개설하고 있다. 사학과 대학원은 1949년 창설된 이래 분과되지 않고 지속되다가 2001년 한국사 전공이 따로 분리됨과 동시에 사학과 대학원은 동양사 전공과 서양사 전공을 포괄하게 되었다. 사학과 대학원의 교과목은 현재 기초공통과목 12과목과 전공과목 87과목으로, 다양한 교과목이 번갈아가며 개설되고 있다.
 

연구활동

 

  사학과의 연구활동은 일차적으로 교수 및 연구자의 개인적인 연구가 활발하다. 이러한 개인적인 연구활동 외에, 교수를 중심으로 대학원생 등 연구자들이 팀을 조직하여 특정한 주제를 연구하는 연구활동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대학원생들이 조직하여 진행되는 세미나는 전공별, 시대사별, 주제별로 다양하다. 그 가운데 동양사전공 대학원생의 세미나인 ‘중국역대 정사식화지 강독회’ 는 1985년 발족하여 현재까지 20년간 지속되고 있는 연구모임으로, 중국사 및 동아시아사를 통시대적으로 이해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서양사전공 대학원생의 세미나팀도 활발한 연구활동을 벌이고 있다. ‘참맘’은 서양사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해 문학서적과 사회과학 서적까지 고루 섭렵하려는 취지에서 진행되고 있는 세이마이고, ‘리케이온’은 서양사를 연구하는데 필수적이 서적과 교양서적을 읽고 토론하는 연구모임이다.

  사학과의 대표적인 학술지인 <사총>은 1955년 12월 학생조직인 사학회의 지난한 노력으로 첫 간행된 이해 지금까지 사학과의 연구성과를 게재하는 장이 되고 있다. 현재 <사총>은 역사학연구회로 이관되어 반년에 한번 간행되고 있으며, 2023년 9월에 제110집이 출간되었다. 이 외에 중국근현대 전공자들이 발간하는 <중국근현대사연구통신>이 반기별로 간행되고 있다.

  사학과 학부생들의 학술 모임으로 녹두사학회가 2006년에 조직되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녹두사학회는 2009년 3월 현재 80여명의 회원이 소속되어 있으며 동양사 연구반(東史書讀), 서양사 연구반(PRAVDA), 동양사 사료 선독반(書林), 서양사 라틴어 연구반, 한국사 연구반, 전공기초학습을 위한 주니어반으로 佳羅史臺까지, 총 6개 반으로 구성되어 활동하고 있다.

 

졸업생의 진로 및 활동

 

  사학과는 1950년 5월 3명의 첫 졸업생을 배출한 이래, 1989년 분과되기 전까지 사학과로 입학하여 졸업한 학생의 수가 약 1600여명에 이른다. 이후 동양사학과 서양사학과로 입학하여 졸업한 학생의 수가 각기 300여명에 이른다. 사학과가 본교에 설치되고 곧 국내 최고의 석학들이 전임교수로 초빙되어 학과를 구성했고 이 전통이 수십년을 이어 내려와 사학과와 그 후신인 동양사학과, 서양사학과는 우수한 교수진의 지도를 받은 다수의 졸업생을 배출하게 되었으며 그 수많은 졸업생은 사회 각 분야에 포진하고 있고 그 활동은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학계에 다수 진출해서 한국의 역사학계에 큰 공헌을 해 왔고 현재도 왕성한 활동을 통해 기여하고 있다. 특히 많은 졸업생이 진출한 곳은 교육계이며, 그 외에 연구기관, 기업, 언론계, 관계에 많은 졸업생이 진출해 있다.